CNK갤러리는 <오늘의 미술> 시리즈 기획 전, 그 첫 번 째 작가로 김지선의 회화를 탐구한다. 1986년생 작가는 10대부터 화가의 꿈을 품어 스무 살에 런던대학교 슬레이드 미술대학에 진학하며 감수성 예민한 20대 전부를 런던에서 보낸다. 테크놀로지의 진화가 빛의 속도로 진행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현대 화가가 탐구해야 할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잡고 작업을 지속해 왔다.
이번 전시는 <Remembered Lights: 각인된 빛들>이라는 주제 아래, 작가의 근작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특별히 일본 나카노죠 비엔날레 당시 가로 길이가 630cm되는 캔버스를 360도 원형의 띠로 고가(古家)에 설치했던 작업(Yellow Warmth to Orange Coldness, 2019)이 갤러리의 1층과 2층을 관통하는 7미터 높이의 벽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관객을 맞이한다. 자연 속에 머물면서 체험한, 인공적으로 생산된 사물과의 교감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감동의 기억을 작업실에서 기록해 간 빛으로 기억된 자연 풍경(Natural Landscape) 시리즈다. 풍경을 회화의 대상으로 관조한다 기 보다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은 과거 시간 속의 감동의 기억에 현재 시점의 내면적 정서를 보태어 표현한 회화 작업들이다. 그녀의 화면을 지배하는 강렬한 노랑/주황색과 녹색의 조합은 후기인상주의 회화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김지선 회화에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 얇게 캔버스에 올려진 물감 결에서 묻어 나오기 힘든 화면이 뿜어내는 색의 자유로운 중첩이 만들어내는 빛의 출현이다.
작가에게 자연으로 떠나는 여행은 회화 작업의 시작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이젤과 화구를 동반하는 여행이 아니다. 그저 자연 속에 머무는 모든 순간을 오감으로 만끽하는 데 집중한다. 작업실로 돌아 온 작가는 작은 캔버스에 촉각에 남아있는 각인된 색들을 빠른 붓질로 드로잉 한다. 자연 속에서 눈으로, 귓가로, 손끝으로, 코끝으로 체험한 가시적 혹은 비가시적 세계에 대한 섬세한 감각은 화가의 심상에 캡처 된 이미지 - 깨끗한 공기를 관통하는 빛 줄기, 서늘했던 바람 결, 습기 머금은 대기, 달큰한 숲의 향기, 빼곡한 나뭇잎 사이로 색을 달리하는 하늘 빛, 새벽녘의 태양, 찬란한 석양의 노을 - 들로 간직 된다.
텅 빈 캔버스를 마주한 작가는 마치 퍼포먼스를 펼치듯 안료에 오일을 섞어 가며 팔레트를 만들고, 밑그림 없이 시선이 꽂히는 곳에서 시작해 붓이 가는 대로 색의 조합을 시작한다. 마치 미켈란젤로가 단지 자신은 대리석에 갇힌 형상을 끄집어내는 것일 뿐이라 한 것처럼, 김지선의 회화는 작은 캔버스에 순식간에 그려졌던 물감 붓질이 대형캔버스에 스스로 재구성되는 것 같다. 화가는 색채와 붓질의 리듬만으로 평면 위에 화이트 큐브 공간 너머의 세계로 인도하는 빛의 공간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그렇게 몇 주를 행복한 무아지경에 빠진다. 완성된 화면을 마주하노라면 누구라도 공감 가능한 생애 어느 한 순간에 체험했던 감동의 기억을 소환케 된다. 그렇게 김지선의 캔버스는 추상적이기만 한 기억과 감동을 감각할 수 있게 하는 매체로서의 회화가 된다.
일상에서 찾은 작은 감동들이 손 안의 전자기기로 간편하게 디지털 이미지로 저장되고, 순식간에 소비되는 시대에 인류가 동경하는 감성은 그 속에 그저 머물기만 해도 무방비로 느끼게 되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감동의 기억을 오랫동안 음미할 수 있도록 일깨워주는 아날로그적 회화가 아닌가 싶다. 이 세대의 감수성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여운을 남기는 회화다. 그리고 이 회화 장치는 계속 진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