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종말속에서도 유머를 찾을 수 있는 아티스트!'   

장난스럽고 유머러스한 작품을 통해 근본적인 질서와 존재에 대한 질문 보여줘

우리들의 삶이 지닌 특유의 이질감과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

다양한 재료와 탈장르로 구현한 독창적인 내러티브의 백미


필립 그뢰징어가 가장 선호하는 작업의 배경은 우주인데, 그 이유는 단지 그가 공상과학 영화에 관한 전문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주공간은 작가에게 현실세계의 제약을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공상과학 영화들이 그러하듯 이러한 창작의 자유로움은 상상 속의 기술을 통한 단순한 현실 도피가 아닌, 우리 시대의 사회적 문제들을 탐구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공상과학 장르는 지구와 수천 광년 떨어진 행성에서 일어나는 머나먼 미래를 보여주지만, 항상 우리의 현재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안정적인 기반을 잃어버린 세상을 그리는 그로징어의 작업 또한 

복잡한 코드와 은유적 상징들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함을 논한다.


대중문화와 예술사의 다양한 모티브로 가득 찬 작가의 작품세계는 활기찬 에너지와 강렬한 색감이 흘러 넘치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낙천적이고 알록달록한 헤도니즘(Hedonism, 쾌락주의)뒤에 무시할 수 없는 어둠과 우울함이 자리잡고 있다. 천진난만하면서도 디스토피아적인 이 행성들을 배경으로 흰색의 괴물, 그 기능이 무엇인지 모르는 기이한 구조물들, 우주의 소용돌이, 부담스러울 만큼 다채로운 꽃들, 

그리고 거친 파도 속 홀로 남겨진 선원의 모습이 거듭 등장한다.


흔들리고 흐트러지기를 반복하는 작가의 세계는 허술하고 일시적인 만남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연대가 영원함을 대체한다. 신표현주의적 감성과 아르브뤼(Art Brut, 원생미술/날 것 그대로의 순수한 미술)의 

영향을 받은 붓 터치로 그려지는 그의 우주는 역동감에 사로잡혀 정신적인 풍경으로 함축되어, 한때 세상의 정점에 자리 잡았던 작품 속 인물은 안쓰럽고무력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필립 그뢰징어는 전시된 모든 작품들의 장난스럽고 유머러스하지만 어둡고 우울한 측면들을 통해, 우리의 세상은 더 이상 근본적인 질서를 따를 수 없는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질서의 존재 자체 또한 환상이었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현실은 조화를 이루길 거부하는 '겹치고 모순되는 관점들'이 지배하며, 우리는 그저 이러한 모순들을 받아들이고 맞춰가며 

생산적인 부조리를 위해 나가가야 한다.


글:스테판 베르그(독일 본미술관 관장)

출처:초이앤초이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