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CNK <오늘의 미술> 시리즈, 그 네 번째 주제는 나상미 작가의 회화다. 다시 그림이다!

작가는 단순한 색채와 간결한 선으로 내면의 감정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추상과 형상의 경계에 있는 회화 작업으로 영국 왕립예술학교 졸업 전에서 주목을 받으며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전시 Voyager는 2018년부터 작업해 왔던 Neither Nor 시리즈의 첫 장이라 할 수 있는 신작들로 구성된 한국에서의 첫 번째 개인전이다. 

전시를 준비하는 가운데 겪게 된 코로나 팬데믹 락다운 상황은 무심히 지나쳐 왔던 삶의 풍경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되면서, 감상자의 심리 속으로 연결되는 ‘포털’마냥, 화면의 깊이가 더 깊어진 듯 하다. 마크 샤갈(1887-1985)의 초현실적인 꿈 속 세상을 그려 낸 듯한 화면을 떠올리게도 하고,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의 강렬한 심리적 상태를 표현한 색의 조합이 발견되기도 한다. 나상미는 대비가 극도로 강조되는 색의 조합과 붓질의 흔적이 도드라져 보이는 두꺼운 마띠에르, 무엇보다 시선을 강탈하는 연극적인 연출력으로 자신만의 회화 언어를 찾은 듯 하다. 자전적 이야기로 감정 이입을 불러 일으키는 표현과 상징이 20세기 그림에서는 상상도 못했을 ‘지금, 오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림에는 어린 시절 종이 박스로 대충 만든 가면을 쓰고 놀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상자를 뒤집어 쓴 각진 얼굴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의인화된 캐릭터들은 마치 연극 무대 위의 배우들처럼 감상자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듯 하다. 그림 속 캐릭터는 감상자의 감정 몰입을 순식간에 이끌어낸다. 런던에서는 산책 길에 활발히 나무타기를 하는 다람쥐에 온통 시선을 뺏기기도 하고, 밤에 귀갓길에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여우때문에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날은 모든 것이 멈춘 것만 같은 세상에서 경이로운 생명력으로 이 땅에 함께 살고 있는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생명체들에게 받은 영감을 고스란히 캔버스에 담는다고 한다. 

“메타버스”라 명명되며 시대의 트렌드가 된 디지털 세계에서 상당 시간을 머물며 위로와 감동을 구하는 오늘의 세대에게 디지털 세계가 줄 수 없는 회화만이 갖고 있는 강렬한 매력이 나상미의 그림이다. 동시대를 함께 호흡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은 시대의 분위기가 담긴 그림으로 새로운 창을 만들어냈다. 그림으로 그리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하는 내 마음 깊은 곳의 나를 찾아가는 ‘심리적 세계로 연결된 창’ 말이다. 

강렬한 구상이 떠오를 때까지,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들은 때로는 몇 년간 편집과 수정을 지속하며 마침내 캔버스에 펼쳐 낼 순간을 기다린다. 일단 붓을 든 순간부터는 직관적으로 이미지가 스스로 화면에서의 균형을 찾아 붓을 멈출 때까지 색이 섞이고 형태들이 자리를 잡아간다고 한다. 그림 앞에 선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매혹하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색과 형상의 예측하지 못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촉각적인 그림만이 갖고 있는 미술의 매혹적인 기능이 아닐까? 일상에서 세밀하게 관찰하게 된 화가의 심상은 은유적으로 표현되며 자전적인 이야기로 기록되어 모두의 그림 일기가 된다. 지구촌의 절대적 인구가 가상의 디지털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요즘에, 화가는 일기를 쓰듯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기억을, 생각을, 감정을 그림으로 담아낸다. 감상자의 해석에 따라 오만 가지 드라마로 재생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우리가 화가를 필요로 하는 이유이자, 나상미의 다음 시리즈 그림이 기대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