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CNK는 <오늘의 미술> 시리즈 기획 전, 그 세번째 작가로 유의정의 도자 기법으로 재현되는 확장된 미술 언어를 탐구한다. 작가는 흙과 안료, 유약을 핵심 재료로 다루며 회화의 역사에서 다뤄보지 못한 질감의 추상적인 빛깔을 입체 화면에 펼쳐낸다. 소박한 흙덩어리는 두 번의 불 가마를 지나며, 재료의 상태에서 색을 입은 견고한 사물로 변신한다.

 유의정은 도자예술의 방대한 역사와 양식을 메타데이터화하여 동시대 예술의 실천 형식으로써 가능한 대안을 끊임없이 실험해 왔다. 2011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동시대 문화 형태 연구 시리즈', '유사 유물 시리즈', '청자 시리즈', ‘달 시리즈’ 등을 통하여 동시대를 관통하는 사회 문화적 형식들을 작품에 반영하며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새로운 미술 언어를 혁신해 왔다. 작가의 이번 전시는 <색상가면色相假面: 감추어진 형상들>이라는 주제 아래, 입체적인 화면 위로 물질로서 체험되는 회화에 대한 탐구의 결과물인 신작들로 구성된다. 견고한 삼차원의 오브제가 된 도자는 겹겹이 축적된 회화적인 결들의 충돌로 낯설지만 신선한 미감을 드러낸다.

 작품 <CM-001>은 수직으로 각이 난 견고한 화병 구조에 코발트색 안료로 정교하게 상.하부를 구분하며 전통의 추상적 무늬로 기하학적 균형과 조화를 표현하며, 파노라마의 구조를 띈 

가운데 화면으로 감상자의 시선을 이끈다. 중심에 위치한 정교하게 그려진 형상은 초록색으로 채워져 있다. 초록색은 두 영상을 합성할 때 쉽게 제거하기 위한 크로마키(Chroma-key) 색으로 주로 활용되는 색채다. 18세기에 제작된 청화백자로 보아도 무방할 리 없어 보이던 도자 표면에 등장한 도발적인 초록 색채는 동시대 시각 문화의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디지털 영상 속 익숙한 색채 감수성을 담아내며 도자와 회화 사이 시간의 간격을 도드라지게 한다. 작품 <CC-005SB>은 마치 둥근 파노라마 화면이 노련한 화공의 필획이 느껴지는 매.난.국.죽의 전통 도상으로 채워진 청화백자가 형광 빛 단색 물감 통에 덤벙 빠졌다가 건져 진 듯 보인다. 이제는 견고하게 고정된 충돌하는 결들의구축 과정이 궁금해 지는 지점이다. 우아한 곡선의 백자 화병을 연상시키는 작품 <MD-001Y (송죽문대호)>은 파스텔톤의 단색 화면 위로 형상을 알아볼 수 없게 뭉개진 청화백자의 결이 흘러내린다. 청화백자의 결이 먼저인지, 단색조의 색면이 먼저인지, 마치 연금술사의 기밀 레시피에 따라 제조된 듯, 유리질로 빛나는 견고한 오브제는 시간의 경계를 오롯이 담아 낸다. 유의정의 작업은 자토의 배합 비율, 가마의 온도, 드로잉의 타이밍, 유약의 적용 등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집중력있게 매달려야 하는 지난한 작업 과정에서,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되 그것을 초월하는 다양한 변수들을 부단히 실험하며 새로운 현대미술의 시각언어로 확장해 간다.

 최근 현대미술의 눈에 띄는 트렌드는 조각과 회화 및 판화에 대한 종합적인 지식과 경험 없이는 불가능한 현대도자에 대한 관심이다. 고려의 귀족들이 경탄했던 비색 청자, 조선 초기 신분을 막론하고 널리 사용되었던 분청자, 또 조선 시대 선비들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된 단아한 미감을 담아내며 서민들까지 널리 애용된 백자에 이르기까지 천 년에 걸치는 시간 동안 한반도의 도공들이 고안해 낸 다양한 기법들은 유의정 작가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고, 채택되면서 동시대 문화 코드를 담아내는 이미지나 형식의 차용을 통해 회화보다 더 회화적이고, 조각보다 더 조각적인 입체 작품의 완성으로 이어져왔다. 익숙한 매체인 도자를 현대 미술의 언어로 새롭게 환기하는 과정에 매료되어 순수 미술과 공예의 경계에서 놀라울 정도로 독창적인 형식을 지속적으로 창조해 내며 독보적인 작업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천 년 전 유럽 대륙이 부러워 마지않던 첨단 하이테크였던 도자 기법은 그리기와 굽기를 반복하며 아무나 쉽게 시도할 수 없는 유의정만의 시각 언어의 비전을 담아낸다.

 주요 전시로는 2011년 서울현대도예공모전 대상 수상에 이어 <COLLECT 14>(사치갤러리, 런던, 영국, 2014),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2015), <중국상해세계현대도자비엔날레>(2016),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 & Albert Museum)에서 열린 <Contemporary Korean Ceramics>(201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