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CNK는 여러 층위의 질감 위에 기억 속 사물을 병렬해 나가며 새로운 시각언어를 창출하는 전재은 작가(b 1972)의 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존버거의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라는 책 중 <깨어 있음에 관하여> -키가 큰 사탕단풍나무 한 그루를 보며... 우리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읽어 온 언어, 하지만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언어... 작가가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나를 바라본다...- 라는 구절에서 발췌한 것이다.
작가는 화면 위에 밀도 높은 물감을 중첩하고, 그 위에 바느질된 오브제들은 실과 천으로 단단하게 엮고 감치고 뜨개질 된다. 그 행위 자체가 기억에 대한 시간을 엮는 것과 유사하다. 바느질은 하나의 언어가 되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꿰매고 동시에 장소와 사물에 대한 기억을 단단히 감치고 있다. 작가의 고유한 스타일로 자리 잡은 거친 물감의 층위들과 전혀 이질적이지 않게 어우러지는 바느질, 오브제들은 회화와 조형물의 일체화로 감각적인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조합은 작품의 주요한 구성요소로서 물성 자체의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특히 텍스트와 형태가 수놓아진 오브제 작업은 재료의 본질적인 화학적 요소와 질감, 색채감으로 작품의 물질성을 극대화시킨다.
작가의 작품 중 많이 등장하는 숲, 동백, 목련나무, 눈 숲, 서랍 등의 사물과 공간들은 자신의 기억과 문학적 연관성으로 이어져 연상되는 추상적인 매체들로 연결되고 있다. 이러한 장소에 대한 사유는 지리학자 이- 푸 투안의 인문 에세이 (공간과 장소)에서 말하는 "공간에 우리의 [경험과 감정]이 녹아들 때, 즉 공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때 그곳은 [장소로 발전]한다"와 같은 맥락이다.
'장소란 내게 기억을 의미하는 동시에 과거와 현재의 시간에 연속성을 제공하고 그것과 연관된 삶의 정체성을 갖게 한다. 그것을 시각언어로 옮길 때 아주 오랫동안 쌓인 시각적 경험뿐 아니라 몸 안의 감각, 특히 촉각으로 느껴지는 질감 표현을 위해 매체 자체가 가진 순수한 질료로서의 물질성을 드러내기를 바란다. 여러 층의 매체와 물감의 층위를 반복해서 올리고 천 오브제에 바느질하는 행위는 과거의 기억이란 현재까지 직선적이라기보다 다충적이고 복합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경험과 기억의 다충성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것과 유사하다. 화면 안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풍경이나 하나의 이미지라기보다 회화라는 평면 안에서 중첩된 질감으로서 여러 층위를 만들어 내는 것이며 문장과 단어들의 텍스트가 기억을 소환하는 장치가 되어 어린 시절의 표상과도 같은 기호나 상징 같은 형태들이 낙서나 흔적처럼 드러난다.' -전재은
어린 시절 바는질로 이불을 만드시던 할머니의 모습에서 바느질을 하나의 언어로 인식한 작가는 단순한 조형요소들의 조화에서 오는 일반적인 미학적 감성을 넘어 여성 고유의 섬세함으로 인류의 삶속에 공통적으로 가지게 되는 정서를 내밀하게 전달한다. 시간이 중첩되어 다차원의 표현으로 이어지는 작품 속 은유적 조형언어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개개인의 우주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작품의 정신적 근간이 되는 '제행무상'의 의미를 생각하며 시간 속에서 빛났던 기억의 순간들과 마주하게 한다. 최신작들로 구성되는 이번 전시를 통해 기억 속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아련한 감정들과 마주하는 사유의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