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hapsody 0/1: Digital Depth
Anna Kim
5. Sep. ~ 7. Oct. 2023
미디어 아트의 존재적 가치에 대한 고찰: 존재와 관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김안나의 전시 “Rhapsody 0/1: Digital Depth”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매체를 활용해 자연 생태계의 위기를 주제로 다루며, 환경오염(해양 및 공기 오염), 기후변화, 그리고 지구의 지속 가능성 문제가 중심이 된다. 그녀의 자연에 대한 관심은 유년시절 미국의 광활한 대자연을 체험하며 자란 배경과 60-70년대 대지예술(Earthworks) 작품을 감상하면서 깊어진 것이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단위에서 기후실천이 모색되고 있는 상황에서, 작가가 자연 생태계의 위기를 작품의 주제로 삼은 것은 그녀가 지금까지 고민해온 예술의 존재론적 가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창작자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언급하며, 자신 작품의 존재론적 정당성을 고찰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예술에 대한 역할과 기능을 이해하는 데 계기가 될 것이며, 디지털과 아날로그 매체의 활용은 실험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론으로 전달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해해야 할 핵심적인 두 요소는 허구(픽션)과 디지털 매체이다. 작가는 자신이 직접 만든 이야기를 배경으로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는 자연 생태계의 위기를 주제로 전개한다. 이는 허구를 실제에 삽입시켜 현실의 상상적 변형을 창출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상호작용하는 관람객의 참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허구는 작가가 작품을 구성하는 예술적 장치로, 형식적인 측면과 내용적인 측면으로 구분될 수 있다. 먼저 형식적인 측면에서, 그녀의 작품 ‘Water Has Memory’, ‘El Nino & La Nina Series’, 그리고 ‘Lev-AI-than’ 은 “이질적인 요소들(‘신화 속 신, 용신부인과 이미 도래한 미래, 엘니뇨와 라니냐의 사이보그 형제, 도넛 경제 모델의 아이콘화’등)”을 조합하여 환경, 기후, 그리고 지구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위기 인식을 높인다. 즉, 기존의 기호와 이미지를 새로운 관계로 연결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며, 이런 방식으로 실재적인 것을 재구성하거나, 틀을 다시 짜는 행위를 쟈크 랑시에르는 ‘미학체제의 허구’라고 부른다. 그는 허구의 라틴어 어원인 핀게레(fingere)가 ‘~인 체하다’가 아닌 ‘~을 만들다’라는 의미라고 주장하며, 허구가 실재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예술로 감각하게 하는 구성적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동시에 우리의 지각 구조를 재편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작가는 기후와 환경문제를 기호와 이미지가 가지는 감각의 재배열을 통해 새롭게 표현하며, 관람객을 이런 자연 생태계 위기를 의식하며 참여하는 행위자로 바꾼다.
허구의 내용적인 측면에서 작가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배경으로 자연 생태계의 위기를 다루며, 이 허구적인 서사는 질 들뢰즈가 언급한 ‘거짓의 역량’을 지니고 있다. 이는 작가의 이야기가 단순히 거짓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거짓이 참과 거짓의 판단 체계 자체를 무너뜨릴 만큼 현실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Water Has Memory’에서는 관람객이 자신의 신체 움직임을 통해 해양 환경의 운명을 책임지는 주인공 ‘수현-되기’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행위는 관람객들이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가는 행위자로서 역량을 강화한다. 따라서, ‘거짓의 역량’을 지닌 김안나의 작품들은 모순적 어감을 가질 수 있지만, 윤리적 차원에서는 오히려 우리의 주체성을 변형하거나 창조하는 힘을 지니며, 삶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열어준다.
한편, ‘수현-되기’는 관람자, 디지털 매체, AI 기술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감각적 경험이다. 이 경험은 의식적 차원에서의 지각이 아니라 물질적 차원의 신체에서 발생한다. 이것은 현상학에서 언급하는 ‘세계-내-존재’의 개념이며, 감각하는 존재는 자신을 세계 안에서, 또한 세계와 함께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현-되기’라는 감각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존재의 유형을 동일성(being)에서 차이생성(becoming)으로 전환할 뿐만 아니라, 인간 너머의 존재들과도 정서적 감응관계를 맺을 수 있다. 김안나의 미디어 작품에서는 디지털 매체가 단순히 정보의 처리, 저장, 표현, 전송 등의 기술적 차원을 넘어 새로운 감각을 생성하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작가의 희망처럼, 이는 미학적 차원에서 우리가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김안나의 작품은 감각적 경험을 통해 새로운 주체성을 생산하는 면에서 미학적이자 윤리적 특성을 지닌다. 이는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의 가치와 작품론을 반영하며, 작가에게는 예술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예술을 통해 삶에 새로운 차원과 다양한 가능성을 열고 있음을 의미한다.
윤혜영 (오하이오 대학교 예술대학 철학박사)